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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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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대한 붕괴 속, 두 신학자의 길20세기 초, 유럽은 문명과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이 문명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파편 속에서 신학은 깊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 시대를 산 두 명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각각 다른 위치에서, 그러나 같은 질문에 마주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2. 바르트: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불신
칼 바르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지성인들이 황제의 전쟁 선언을 지지하는 ‘지식인의 선언’에 서명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시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과 도덕, 진보를 신뢰하며 신앙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낙관이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바르트는 이후 하나님의 전적인 타자성을 강조하는 신학을 전개합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 역사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보았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대표작 로마서 주석이 유럽 신학계에 던진 신학적 충격입니다.
3. 바르트의 저항: 히틀러를 향한 신학적 “아니요”
바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 복음주의 고백교회 운동의 중심인물이 됩니다. 히틀러의 독재와 나치 정권에 맞서 그는 1934년,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의 주요 기초자가 되었고, 그 선언을 통해 독일 교회의 나치 협력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바르트가 교수직에서 해임되던 순간입니다. 그는 정부의 충성 서약서에 서명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외에 누구에게도 충성 맹세할 수 없습니다.”그는 결국 스위스로 추방되지만, 그곳에서 끝까지 독일 교회를 위한 신학적 조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4. 본회퍼: 실천으로 이어진 신앙
디트리히 본회퍼는 바르트보다 한 세대 아래의 신학자였지만, 전쟁 시대에 훨씬 더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흑인 교회에서 체험한 **‘고난 받는 신앙’**에 깊이 감화됩니다.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나치 정권의 등장에 강한 비판을 쏟아냅니다.
그는 단지 말로 저항한 것이 아닙니다. 히틀러에 반대하는 지하 신학교를 세우고, 나치 협력 교회와의 타협을 거부했으며, 결국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체포됩니다.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는 “값싼 은혜”를 비판하며, 진정한 신앙은 고난을 동반한다고 말합니다.
5. 신학자의 순교: 본회퍼의 마지막 순간
본회퍼는 감옥에서도 신학적 사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옥중 서신에서 ‘비종교적 시대의 기독교’를 고민하며, 전통적인 신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신앙의 탈종교화를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유는 현대 신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945년 4월, 전쟁이 끝나기 직전, 본회퍼는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아홉이었습니다. 처형 직전, 그는 동료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작입니다.”
그의 죽음은 단지 한 명의 신학자의 죽음이 아니라, 신앙이 삶 전체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남습니다.
6. 바르트와 본회퍼의 공통점: 하나님 중심, 인간의 책임
이 두 사람은 시대적 배경도, 나이도, 위치도 달랐습니다. 바르트는 탁월한 이론가로서 신학의 방향을 제시했고, 본회퍼는 삶으로 신학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다음과 같은 신앙의 핵심을 지켜냅니다.
- 하나님의 절대성 – 인간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신학
- 신앙의 실천성 –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
- 정치적 저항 – 불의한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음
그들은 공통적으로 신학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신앙은 불의와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7. 침묵과 저항 사이에서: 교회의 선택
당시 독일 교회의 다수는 침묵했습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많은 교회들은 안정과 생존을 위해 침묵하거나 협력했습니다. 하지만 바르트와 본회퍼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세상의 양심이 되어야 하며, 진리가 왜곡될 때는 그 앞에서 분명히 ‘아니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둘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교회는, 신자는, 불의한 권력 앞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8.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남긴 신앙의 유산
바르트는 전후 시대에도 활발히 활동하며 신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저서는 지금까지도 개신교 신학의 기초 중 하나로 읽히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그의 글과 삶은 전 세계적으로 읽히며, 실천적 신앙의 모델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특히 본회퍼는 오늘날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짜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묻게 합니다. 교회 출석이나 기도 횟수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향한 실천이 진짜 신앙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삶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9. 시대를 거슬러 신앙을 말하다
바르트와 본회퍼는 전쟁이라는 폭력의 시대에, 신앙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학을 고상한 이론이 아닌 삶의 책임으로 이해했고, 기독교가 현실과 무관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전쟁과 혐오,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런 시대에 바르트와 본회퍼가 던졌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진짜 신앙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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